03.09.16
벌초이야기
어린 시절엔 제궁집이라고 있어
시사(시제)철엔 몸만 가서
하룻밤 자고, 제궁집에서 장만한 음식을
그분들이 직접 날라주는데로
산소를 돌면서 시사를 지내고 집으로 오면 되었었다.
시사 때는 이미
제궁집에서 벌초를 모두 끝내 놓고 있었다.
그것도 산소가 20여 상부나 되니 엄청 많은 품이었다.
내 기억으론 그분들이 산을 지켜 준다고 하였는데
그분들에게 돌아가는 대가는
바닥에 떨어지는 솔갈비와 옆가지들을 거두어서
연료로 쓰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 시절엔 산주인인 것이 대견하고 으쓱했던 기억이 난다.
산에 붙은 밭때기도 도지를 주어 매년 얼마씩 받았었다.
세월이 흘러 어느 사이엔가
제궁집 끝발이 세어지더니
주인을 대하는 태도도 예전만 하지 않고
마지못해 하는 인상도 역력하더니
제궁집도 대를 내려와 아랫사람의 태도는 더욱 그러할 진데
모든 것이 눈치도 보이고
쬐끄만 밭때기로는 성이 안 차는지 도지세도 낮추자고 자꾸 그러고...
이미 이때는 벌초는 우리가 직접 하게 되었으며
이때부터 맏이로 태어난 것이 서러워진다.
그나마 부치고 있던 밭때기는 조건이 나쁘니 안 부친다는 둥
도지세 낮추기 흉계들을 꾸미니
울컥한 나는 그 밭에다가 당두충을 갖다 심었다.
농사의 농 자도 모르던 나는 가만히 놔두면 크는 줄 알았지만
잡초에 묻힌 나무들은 모두 고사하고...
아버지께서 심심풀이로 거기에 매달려 몇 년 농사를 지으셨는데
어째 거기서 나온 수확물들은 주인을 닮았는지
전부 조그맣게 변한다냐...
그렇게 아버지도 포기하시고...
도지 붙여 먹던 그 양반들 흉계대로
그들에게 그냥 붙여먹으라고 내 주었다.
이러는 사이에 거북한 제궁집도 포기하고
모든 시사음식을 우리 집에서 직접 장만하게되니
그 경비도 만만찮구나.
더군다나 1년에 한번씩 치러야 하는 벌초는
나에게는 너무나 큰 일이라...
낫질 한번 해보지 못한 나에게는 여간 큰 고통이 아니었다.
그래서 예치기 하나 장만하였지만
혼자서는 엄두도 내지 못할 일거리라.
도대체 11대 종손이 무엇이란 말인고...
물려받은 것은 산에 딸린 산소들 외에
또 무엇이 있을꼬...
아버지께서 애지중지하시는 산소들이니 뭐라 말 할 수도 없더라.
그냥 하자는 데로 따라하다가
어이구 아버지...
저는 이런 고생을 아들에게 물려주기 싫소.
내 대에는 조그마한 납골당 만들어 조상님들 모두 거기 모실라우
여러 구릉에 있는 묘소들 알지 못 해 못 찾아가는 것보다는
한 곳에 모아 찾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 더 좋지 않겠어요.
뿌리 사상은 있는 것이 좋은 것도 알지요.
찾아가지 못하는 산소보다야 함께 모셔진 납골당이 더 안 낫겠습니까?
그래 이번에도 아버님 애지중지하시는 산소 벌초하러 갑니다.
세월 따라 애들 어른 되고
나보다 일 잘하는 아우들 있으니
아직은 그들 믿고 힘든 노가다하러 갑니다.
우리집도 이제는 많이 변하여
완고하신 아버지 의사를 물리치고
시사를 별도로 지내지 않기로 했습니다.
추석 제사 지내고 나서
함께 장만한 음식을 가지고 산소로 가서
추석 당일에 성묘를 겸하기로 했습니다.
명목은 이중 부담을 줄이자는 것이었지요.
저가 너무나 강력히 주장했기에
이렇게 된 것입니다.
덕분에 우리 추석은 매우 바쁜 일정이 되었답니다.
모처럼 모이는 자리에 오순도순 이야기하면서 보내면 좋으련만
빨리 납골당을 지어서
조상 참배하는 시간을 줄여야겠습니다.
조상참배는 뿌리사상에서 유래한다고 보면
명절에 모여서 즐겁게 노는 것도
서로 뿌리들을 확인하는 순간일 것입니다.
명절을 즐겁게 하여 주어야 하는 것도
앞서 가는 사람들의 몫일지니
명절이 기다려지게 만들어 주는 것도 우리 몫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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