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ing/생각과 사고

혼주 대리

날마다 추억 2017. 8. 19. 20:16
021200 


혼주대리
 

아침부터 분주하다.
다섯째 처제가 시집을 가겠단다.
신기하게도 채팅을 하여 알게된 대전 사는 신랑이다.
얌전하게 집에만 있어서 시집도 못 가는 것 아닌가 생각했는데,
고무신도 짝이 있다더니...
분위기도 둘이 비슷한게 천생연분일 같다.
나이도 얼쭈 맞고...

오늘 상견례를 해야 되는데...
내가 왜 분주할까....
그것은 내가 이 집의 최고 어른이기 때문이다.
올 초에 장모님까지 돌아가시니
머 고아라고 하면 맞을려는지...
음... 참... 맏이는 괴롭다.

아침 내내 이발하고 설쳤건만
시간은 자꾸 가고 있었다.
대구에서 오후 한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벌써 12시가 다 되어가고 있다.
버스편을 알아보니 12시 20분에 가는 것이 있지만...
대구 도착하면 두시가 다 되어 갈거고...
약속 장소로 가려면 더 시간이 걸릴 것인데...

처제는 휴폰으로 동동거리는 모습을 나타낸다.
큰일이다.
나보다 훨씬 연배인 분들을 만나러 가는데 기다리게 한다는 것도 예의가 아니다.
할 수 없이 택시를 대절하였다.
8마넌에 간단다.
어쩔 수 없지 머

그래 겨우 대구에 도착하여
다시 택시를 타고 약속 장소에 가니
20분 정도 지각이다.
돈이 좋기는 참 좋네...

에구 어색해 죽겠네
그집 신랑과 부모님
우리는 신부와 형부와 언니
격이 어색하지 않어
참내
그래도 어쩔 수 없지머

장인 장모님이 계셨으면 좋았을 걸
그냥 인사로 해 본 말인데...
저쪽 분들은 못 내 아쉬운 모양이다.
참 남의 맏이가 되니 별거 다 경험한다니까요.
그래 말들을 기억해 내며 얘기를 이어가는데...

줏어 들은 말들도 많을 꺼...
어떻게 하실 건지 계획도 물어보고
신부측에는 재산 남겨준 거 없이 돌아가셨으니
달랑 몸뿐이고
나도 내 새끼 키우기도 바쁘고...
뾰족하게 내세우며 이러자 저러자 할 입장도 못되어
하자는 데로 하기로 하고
그렇게 헤어지는데...

다시 생각해 봐도 난감해 지데
최소한의 예의라도 지켜야 할 것인데
나참 내 새끼 보내기도 전에 처제 먼저 치뤄야 하니...
장모님 장인어른 돌아가실 때도 맏상주 노릇하느라 참...

시집간 처제들도 잘 사는 것도 아닌지라
일정액 거출할 형편도 아니구.
에구구 몰따...

집으로 오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맨 오른쪽 앞에 탔더니 다리쪽에 한기가 엄습한다.
코트를 벗어서 다리에 막고 있으니.
점심 식사하면서 먹은 술 탓인지 스르르 잠이 들었는데

배가
배가
너무 아프다.
눈을 떠 밖을 보니 영주에 도착하려면 50분 정도 더 있어야 겠네
화장실에 가고 싶다.
화장실 가고 싶으면 미치죠...
나는 하나 더 보태어 배가 무지 아파요.
무정한 운전수가 내려서 볼일 보고 오라고 할리도 만무하고...

어우.....
진땀이 막 흐른다. 차가운 땀
당신 얼굴이 노래졌어요.
마선생 말에 하얘지지 않고 노래졌단 말이지...
아까 먹은 음식물을 떠 올려 본다.
머 굴도 싱싱했는데...
내가 식중독일리는 없는데.

몇년 전 여름에 초상집에 갔었는데
문어를 좀 먹었었지.
나중에 배가 자꾸 아프더라구...
속으로 생각하기를
지가 술을 그렇게 퍼 엉기는데
속이 버텨나겠냐..
자업자득이라 생각하고 그냥 버텼더니 괜찮드라고..
그런데 이후에 알아보니...
문어를 먹은 친구들은 모두 병원 신세를 졌다는 거야.
상주가 미안해 할까봐 쉬쉬들 했지만...
나는 식중독에 끄떡없다고 자신하고 있었거든..

그런데 설마 식중독일리야...
어우어우 엄지와 둘째 사이를 손톱으로 막 찌르레요 마선생이...
좀 낫다니까 마구 찔렀어요.
트림이라도 하면 나을 같은데 반응도 없고...
자세도 바꾸어 보지만 더 아픈 같아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땀만 바작바작 흘리며
시간만 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죠.

운전수 옆이라서 보더니 껌을 주는데...
그거 약될 같지 않아서 그냥 버티고 있었죠
대신에 운전수가 속도는 더 올렸나봐요.
한 10분정도 단축하여 영주에 도착했는데.
이런 내리니까 버틸만 하네 제길...
트림도 좀 나오니 한결 시원해 지네.

어휴
아닌 혼주 짓 하느라고 긴장을 했었나...
배가 고파서 눈치도 없이 마구 집어 먹기라도 했는 건지.
마선생은 배가 고프데요.
눈치보느라 별루 먹지를 못했데요.
배가 아팠으니 오늘은 한잔 못하겠네....?
아냐 그쪽 배는 괜차나..
그렇다면 이따가 한잔 사래요.
그러지머.....

2002년 12월 어느날=====삶과 사랑과 낭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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