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4.24.
작년에 작은집 둘째가 장가를 갔다.
노총각이었다.
맏이는 애가 초등학생이다.
작은 아버지는 얘들이 초등학생일 때 사고로 돌아가셨고...
그런 몇년후
내가 제의를 했다.
우리 명절을 같이 지내자.
그래서 우리 집에서 같이 명절을 보내게 되었다.
그런 중에 수년전에 또 숙모님이 돌아가셨다.
병원에서 뇌수술중 돌아가셨다.
수술전에는 아주 쉬운 수술이라고 말했는데 결과는 참담했다.
본 주제와는 동떨어지지만 병원 영안실 풍경을 잠깐 얘기하고 넘어가야겠다.
**대학 영안실이었는데...
아주 상놈들로 득시글거리는 풍경을 한마디 해야겠다.
사촌들이 어리기 때문에 음식 장만을 할 수가 없지만 거기서는 모든 것이 돈이면 다 해결되었다.
장의차를 서로 저희 것으로 쓰라고 소스가 자꾸 들어오는데...
한쪽은 교회를 물고 들어오고
한쪽은 체육계통인가보다.
양쪽 다 닳아빠진 상꾼들인 것은 분명한데...
체육계통의 그놈은 정말 무식했다.
공갈 협박같이 들리었다.
미친 넘일세...
우리는 그래도 착해보이는 교회쪽을 택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 놈이 정말 협박을 하데.
작은집 둘째가 체육관을 운영하고 있었거든.
너 잘 되는가 두고 보자는 거야.
내가 그 양반에게 노환으로 돌아가신 분도 아니고 수술 중에 생각지도 않게 돌아가셨는데...
이 슬픈 초상집에서 님이 좀 양보하라 하였지.
그놈 머라 그러는가 하면
"모두 그렇게(슬프다고) 말합니다."
남의 슬픈 것은 안중에도 없는 놈이더라고...
아무리 장례장에서 닳아빠진 놈이라 하더라도 예의 눈꼽이라도 있었으면 좋으련만...
이런 무례한 놈을 우린 택할 수밖에 없었답니다.
둘째에게 1%의 확률일지라도
해꾸지 할까봐서 그놈 차를 이용해서 장례를 치루었답니다.
본론으로 와서...
그렇게 숙모까지 보내고 얼마가 흐른 작년에
드디어 둘째가 장가를 갔답니다.
작년 설이었는가봐요.
작은 집 맏이가 우리도 제사를 따로 지내야 되겠데요.
동생도 장가를 곧 가니까.
그리고 작년 추석은 저희들끼리 지냈죠.
어차피 세월이 흐르고 사촌의 자식들이 6촌이 되고
그 자식들은 8촌이 되는 이치야 나도 알죠.
그러나 떼어 보내는 아픔은...
오손도손 항상 함께할 수 없는 것이 이치거늘...
종손의 마음이려나...
저들도 많은 생각을 했겠죠.
저희들끼리 의견도 있었을 거구
순리는 거스를 수 없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