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ing/추억 속으로

[바둑]지금도 새록새록 떠오르는 것은

날마다 추억 2017. 8. 21. 21:40

      할머니가 강원도 함백에 계셨다. 어떤 관사집 옆방에 세를 얻어 삼촌 두 분을 뒷바라지 하고 계셨다. 나는 여름방학에 할머니께 놀러 가게 되었는데... 밤에 삼촌과 같이 집으로 가는데 깜짝 놀랐다. 도랑 건너 풀 속에서 뭐가 반짝거리고 있다. 누가 무슨 장난치는 거야. 삼촌이 웃으며 반딧불이란다. 반딧불을 처음 봤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우리 고장에도 있는데 나는 왜 못 보았는지 모르겠다. 관사 안집의 식구들은 큰 도시에 사는가보다. 그들도 방학이 되어 내려왔는데, 여자애 둘이었다. 큰 애는 두해쯤 선배 되겠고 작은 애는 내 또래인 같았다. 좋은 곳에서 살아서 그런지 하얗지 그지... 우리 어릴 때는 촌 애들은 머 거의 꽤죄죄(이거 맞는 낱말인강?)했지 큰 애는 좀 성질이 있었고 작은 애는 착했다. 작은 애랑 어떻게 하여 바둑을 두게 되었는데, 실제는 바둑도 아니지 머 둘이랑 꼼꼼이 판을 다 매웠을 거야 이윽고... 그 애가 말했어... 너 바둑 너무 잘 둔다... 바둑계에 들어서면서 첨 듣는 칭찬이었을 거야. 거기는 그 아이에 대한 추억이 아직도 나타나는 것은 그 아이인지 바둑인지는 잘 모르지만... 내가 살던 읍내와는 확실히 다른 추억이 많은 곳이었지. 매미도 처음으로 잡아봤어. 우리 동네는 좀 많이 밖으로 나와야지만 그런 풍경을 볼 수 있지만, 그 동네는 문만 열면 산이고 들이었으니... 주로 산이었지... 어떤 쪽으로인가 가다가 보면... 철길인데 무지무지 높은 철길을 놓고 있었어. 완전히 공사가 다 된 것은 아니었는데 몇 층이나 되었다고... 무척 신기하게 쳐다보곤 했었지. 그 당시 함백선을 철암과 연결시키는 그런 공사였을 거야. 매미가 맴맴 울어 얼른 뛰어가서... 살금 살금 어림없다야 메롱 요렇게 까불면서 푸르릉~~~ 그런데 매미가 울어 너무 너무 시끄럽게 울어 도대체 나더러 어쩌란 말이냐. 아니 두 놈이 붙어서 우네. 우리 지방사투리로 말하자면, 오부랑붙었다고 했지. 지금은 안 쓰는 용어인데 어원이 어디서 나온 건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어. 긴 작대기를 가지고 가서 건드려봤지. 두 놈이 꼼짝도 못하고 꼭 붙어서 떨어지더라고 나는 이렇게 매미도 잡아봤지. 그 다음 해에 또 거기를 갔는데 이번엔 이사를 다른 곳으로 했는데. 이사한 집은 조금 나가면 물이 좀 많은 개울이 있고 개울 건너면 바로 산이었지. 할아버지는 개울 건너에 평지진 곳에다가 잔 돌들을 걷어내고 거기다가 분초를(지금 부추라고 하던가?) 심어놓으셨는데 분초에다가 콩가루를 뿌리고 밥 위에 얹어 쪄서 양념해 내놓은 반찬은 정말 꿀맛이었어. 궁금한 것이 많은 나는 산으로 올라갔는데, 풀 밑으로 개미들이 들랑날랑하잖겠어 우리 읍내에는 조그만 개미뿐이었는데, 이 개미들은 훨씬 크더라고... 이 개미보다 더 큰 개미도 있는데 이 개미들한테는 꼼짝 못하고 토끼더라고 궁금해서 풀더미를 들어 올렸지. 쉽게 들리더라고.. 우아 개미들이 버글버글 놀란 그들은 우왕좌왕 알을 물고 움직이는 일꾼들... 아구구........ 난 삼십육계를 놓아야 했어 계네들이 내 다리를 마구 깨물잖아 어휴 혼났어. 개울을 건너지 않고 한 쪽엔 제재소가 있었어 기억에는 오래전에 폐업한 제재소인 것 같아... 톱밥이 쌓인 곳이 있었는데, 거긴 정말로 나에겐 좋은 놀이터였어. 그 톱밥들을 파헤치면 사슴벌레가 많았는데 주워서 집에 가지고 와서 놀면 언제 시간이 가는지도 몰랐어 정말 얼마 경험하지도 않은 곳이지만 이 나이에도 새록새록 떠오르는 것은 정말 나에게는 좋은 곳이었나 봐

 ####04.06.08. 08:51

흑백 단편영화를 본듯한 느낌입니다.글 잘쓰시네요.
 
 
 ####                            04.06.08. 09:16
아.... 전 그림동화를 보는듯했습니다...
 
 
 ###                            04.06.08. 10:29
초류향님 안녕하세요?영주시에 사시나봐요.저도 영주에 살고 있습니다.^^
 
 
 ####                            04.06.08. 11:41
아름다운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04.06.08. 12:54
문장이 예사롭지가 않습니다..촘촘히 쌓아올린 돌담처럼..차분하면서도 담백하게..동양화를 보는듯 합니다..좋은글 감사..
 
 
 ####/####                                 04.06.08. 13:29
헉~ 바둑스토리... 예전 강철수 만화 제목인데요... 그 만화 생각나네여 ^^
 
 
 ***                            04.06.08. 17:11
하하.... 꼬리달아주신 분들께 감사를.... 이 야그는 아마 40년 전쯤 야그일 겁니다...
 
 
 ####                            04.06.09. 06:20
와 ㅋㅋ 진짜.. 그림동화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