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전 사진 ; 조선고적도보로 보는 영주 부석사
작년에 내가 속해있는 문화유산답사모임에서 영주 인근지역으로 답사 일정이 잡히자 부랴부랴 답사자료집을 만들다가 조선고적도보 에 실린 부석사의 사진과 현재의 모습을 비교하여 보았다.
물론 조선고적도보에서도 영주 부석사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진을 보면 부석사 입구에 있는 당간지주는 원래 위치에서 아래도 옮겨진 것 같고 무량수전, 안양루, 조사당외엔 다른 건물이 전혀없어 보입니다. 지금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지금의 조사당 건물이 요사채로 쓰였을 가능성이 많아보이며 사찰의 규모에서도 당시 조선고적도보에 실린 인근의 김용사, 대승사,봉정사 등 다른 사찰과 비교를 해보면 너무나 규모가 작다. 그리고 조사당 처마에 심겨져 있는 선녀화는 당시엔 어디에도 없다. 안내문에는 의상대사가 심었다고 소개되어 있는데 언제 심었을까? 의구심이 든다.
내가 문화재 답사를 갈 때 핸드폰에 이미지로 넣어가는 조선고적도보 파일은 아니러니 하게도 일제강점기에 제작된 것이다. 당시 일제는 한반도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사업을 시작한다. 그 결과 한반도의 역사, 사회에 대한 방대한 양의 기초자료가 만들어진다. 그 일환으로 조선고적도보는 1915년부터 20년 동안 조선총독부에서 한반도에 산재되어있는 낙랑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고적들을 조사 발굴하면서 이를 도록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일제 지배하라는 특수한 상황 하에서 한국인이 제작한 사진 기록이 턱없이 부족한 현실을 볼 때 이 사진들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일본인들에 의해 제작되었다는 점을 상기할 때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긴 것은 곤란하지만 1900년대 초의 다양한 문화 및 문화재의 모습을 현재에도 볼 수 있는 중요한 책임은 분명한 것이다.
지난 겨울 봉현초등학교에서 학부모와 함께하는 문화여행에서 수원화성 답사를 했었는데 수빈이가 일제강점기 때 조선고적도보의 수원화성 사진과 현재의 모습을 보며 틀린그림찾기 놀이하듯 하는 모습을 보고 나또한 이 자료의 중요성을 느낀다.
이것을 우리나라가 아닌 일본인들이 만들었다는 것에 대하여서는 너무나 큰 아쉬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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