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와 인근동네/영주 하이킹

죽계천 트래킹

날마다 추억 2021. 8. 6. 11:05

2021년 7월 20일

죽계천을 걷다.

 

 

아침 네시에 일어나 철탄산, 성재를 돌아 서천폭포 쪽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서천교 조금 윗지점에서 산길샘을 작동시켰다.

그리고 조깅으로 장수교까지 갔다. 조깅 거리 3.4키로 정도

36번 국도를 경계로 아래는 서천, 위쪽으로는 죽계천이다.

 

 

장수교부터는 워킹하면서 사진 촬영을 하였다.

 

 

 

장수교를 건너

죽계천 강변으로 내려섰다.

 

둑방에는 전망대 겸 쉼터도 있다.

 

참... 잘 가꾸어 놓은 위락시설인데...

우리나라도 이제 못 산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꽃범의꼬리 가 군락을 이루며 피어 있다.

 

황토색 인도 ...

 

참나리 군락도 있다. 

약간의 텐트도 보이고, 산막처럼 보이는 건물도 두어채 보인다.

 

갑자기 도로가 좌로 30도 꺾이며...

 

둑 위로 올라섰다.

 

산뜻하게 단장된 둑방을 걷는다.

 

여기를 돌아 올라가면 안정면이 시작된다.

 

예전에 이 동네는 물고기가 엄청 많이 잡히던 곳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동네 청년들이 전봇대에서 전선을 끌어내려 물에다 담구는 짓을 벌였다.

그리고 사망사건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그리하여 깊게 패였던 곳을 메우고 말았으니...

이후부터는 물고기가 거의 보이지 않게 되었다.

유원지 같았던 이 동네는 이제 풀만 무성히 덮혀 있다.

 

지금 다시 보를 만들어 물이 고여있는 모양새이다.

 

 

건너편 저곳은 구미갱변이라고 하네...

작은 개울의 합수부.

좌측에 호박잎 넝쿨같은 저 식물은 가시박 넝쿨이다.

 

이제 안정면 동촌리에 들어섰다.

마을이름을 피끝마을이라고 한단다.(설명 : 뒷부분에)

 

 

피끝마을과 뒤 배경은 구름 머금은 소백산.

 

계속 강둑으로 올라가고 있는 중.

 

하류쪽을 뒤돌아 봄

 

동원교에 도착

 

동원교를 지나 계속 둑으로 가고 있음.

 

저쪽 부분은 단산면에서 내려오는 사천과 합수되는 부분이다.

 

저기 아래쪽에도 워킹코스가 있는 것 같다.

 

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간다.

많이 이용하지는 않는 듯

 

인구가 많지 않은 동네이니...

 

얼마 걷지않아 다시 올라가야 했다.

 

아... 지난 몇 달 전에 왔을 때만 해도 출입할 수 없던 곳이었는데...

 

말끔하게 새길이 단장되어져 있다.

 

사천교에 도착한다.

단산면으로 가는 길이다.

 

이 사천교를 건너 왼쪽으로 거슬러 올라갈 것이다.

 

강변으로 유유히 올라가고 있다.

이 날은, 이 시간은? 

해가 뜰 무렵이지만, 구름이 많아 해가 잘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여기는 이제 순흥면이다.

 

간혹 농사짓는 사람들도 보였다.

 

지동교에 도착한다.

이정표를 보면서 어디로 갈 것인지를 생각한다.

다리를 건너서 가면 큰 길이 나오니 쉽기는 할 같으나 죽계천에서는 많이 벗어날 것 같다.

사현정, 봉서루... 계속 강변으로 가도 될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산길샘에서나 카카오맵상 끊어진 밖에 보이지 않는다.

혹, 희끗한 부분들이 샛길 아닐려나...

그래서 그냥 직진해 본다.

 

안쪽 마을 지동 2리

 

강을 따라 더 올라가 보았는데...

 

저 윗쯤에서 길이 막히고 만다.

그래서 죽계천 트래킹은 여기서 멈추고 돌아서 나간다.

 

오늘 아침 총괄

거리 12,473m, 20,789걸음

 

 

 

 

 

 

 

피끝마을 :

피끝마을, '피'가 냇물을 따라 흐르다 멈춰 '끝'난 곳, 충절의 고장  순흥(Blood End Village, Tragedy History) , 단종애사


경상북도 영주시 안정면 동촌1리의 다른 이름이 피끝마을이다. 조선 시대의 슬픈 역사 중 하나인 단종 복위 운동과 관련이 있다. 마을 이름은 "피"가 냇물을 따라 흐르다 멈춰 "끝"난 곳이라는 데서 유래했으며, 단종애사를 통해 유명해졌다.
 이곳 피끝마을의 유래는 단종애사로부터 출발한다. 세조의 아우이자 세종대왕님의 여섯 번째 아들인 금성대군은 애초부터  세조와 뜻이 달랐다. 거사를 꾸미는 형 세조의 눈 밖에 나서 식령, 광주 등으로 유배되었다가 사육신 사건이 터지자 다시 순흥으로 유배되는 처지가 되었다. 
 금성대군과 이곳 순흥부 부사 이보흠이 뜻을 맞춰 단종복위의 거사를 꾸미고 있는데 시녀 김련과 관노가 격분을 빼내 밀고하는 바람에 들틍이 나 버렸다. 풍기 현감 김효급이 이 사실을 세조에게 알렸고 한명회의 6촌인 안동부사 한명진이 포졸을 풀어 순흥도호부에 불을 지르고 닥치는 대로 백성들을 무참하게 죽였다. 이 당시 순흥도호부에 살고 있던 백성들은 역모의 땅에서 살고 있다는 이유 하나로 순흥 30리 안에는 사람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순흥 청다리 아래로 끌려가 죽음을 당했는데 이때 흐르는 피가 죽계천을 따라 십여 리 흘러 이곳 동촌 1리에서 끊어졌다하여 지금도 이 마을을 ‘피끝마을’이라 부르고 있다. 
 순흥은 역모의 땅이라 하여 온갖 차별을 받게 되었다. 당시 도호부였을 만큼 컸던 순흥은 단종 복위 운동이라는 사건을 계기로 폐부가 되었으며, 넓은 땅덩어리는 각각 영천(榮川), 풍기, 봉화로 갈갈이 찢겨져 통합됐다. 영주는 메밀묵 음식이 유명한데 서민들이 살기 위해 먹었던 메밀묵으로 태평초 음식을 만든건  백성들이 태평스럽게 살 수있는 세상을 기원하는 음식이었던 것이다. 금성대군이 순흥도호부사와 함께 단종 복위를 꾀하는 거사가 발각됨에 따라 순흥도호부가 폐지되고 먹을거리가 부족해지자 구황작물인 메밀에 의존하기 시작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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