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양 칠갑산 산행
17.08.13
산내들산악회
오늘 칠갑산을 오르면서 연구를 했습니다.
콩밭매는 아낙네와 청양 남자들에 대한 연구 고찰
그 결과는 이렇습니다.
배적삼을 흠뻑 적시며 콩밭매던 아낙네는 너무 힘들어 도망가야지...
그러나 그 다음 날 아침 아낙네는 흥에 겨워 일을 합니다.
왜일까요? 밤에 먹는 고추가 참 매웠나 봐요.
그래서 청양군의 부부는 금실이 좋다는...
뭐 이런 전설이 있다 합니다. 츠릅~~~ 믿거나 말거나~~
천장호....
어이구 출렁다리가 흔들리는 것이 취한 것 같습니다.
호수를 지나자 마자 바로 오름이 시작됩니다.
한숨 쉬면서 호수를 내려다 봅니다.
요즈음은 산보에 불편하지 말라고 많은 보조물이 설치되어 있지요.
저 거적들은 수입한 것들이지요. 그래도 좋기는 좋습니다.
수입 그러면 예전엔 선진국 고급품들이 생각나지만...
지금은 싼 물건들이 아주 많죠.
그 중에서도 1회성 물품들은 싼 중국산들을 많이 이용하기도 합니다.
꼭디에 다 왔나 봅니다.
뭐기에 꼭디를 찾을까...?
희망이 아닐까요.
저 아래 산마루에서는 콩밭매는 아낙이...
콩밭 매에는 ♬~
흠. 노래를 첨부시키려고 인터넷에 찾으니 없네요.
아낙이, 배적삼을 적시며 일하는 아낙이 보이는 듯 합니다.
멀리로 아기자기한 산들이 가득하네요.
언제 시간이 되어 저 산들을 돌 수 있으려나...
ㅇㅣ제는 자꾸 추억으로 간직하려는 생각이 많아지군요.
아니면 추억을 살려내거나...
온화해 보입니다.
이퍼리를 벌레가 많이 먹었네요.
맛있는가봐. 나두 먹어 볼까...
꽃은 항상 아름답죠.
장곡사...
오...! 국보가 두점이나 있는 절이군요.
꽤 유서있는 절입니다.
대웅전이 상하 두곳 있는 절은 처음 봅니다.
이 절에 대한 상세 설명은 펌으로 아래 첨부하겠습니다.
하산하면서 위에서 내려다 보며 찍은 전경입니다.
보이는대로라면 규모가 큰 절은 아닙니다.
윗대웅전
늠름한 단풍나무인가? 생각도 없이 찍었네...
파편들의 모음...
왜 이렇게 되었을까...?
빛 바랜 건물들이 고풍스러움을 더합니다.
이런 것이 좋습니다.
현대것을 가져다가 땜빵해 놓은 것보다
아래 대웅전
차분히 역사를 생각하며 찬찬히 봐야 하나 대강 마무리합니다.
이 영감은 그 옛날에 먹을 것도 없었는데 배가 탱탱 ㅎ
오늘도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내일보다는 오늘이 더 젊습니다.
하루라도 더 젊을 때 즐기세요.
돌아오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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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곡사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이다. 사지에 의하면 통일신라시대 850년(문성왕 12)에 보조선사가 창건한 후 여러 차례에 걸쳐 중수되었다. 이 절은 약간 경사진 땅 위에 2개의 대웅전이 있는 특이한 가람배치로 되어 있는데, 아래쪽에는 운학루·하대웅전·요사·주지실이 있고, 여기에서 돌계단을 50m 정도 올라가면 위쪽으로 상대웅전(보물 제162호)과 응진전이 있다. 상대웅전 안에는 통일신라시대의 철조약사불좌상부석조대좌(국보 제58호)와 철조비로자나불좌상부석조대좌(보물 제174호)가 나란히 봉안되어 있고, 하대웅전에는 고려시대의 금동약사불좌상(보물 제337호)이 있다.
장곡사상대웅전
장곡사 경내의 언덕 위에 있는 고려시대 목조건물. 보물 제162호. 평면구조는 앞면 3칸, 옆면 2칸으로 맞배지붕의 건물이나 근세에 들어와 개수했기 때문에 많이 변형된 것으로 짐작된다.
높은 돌기단 위에는 자연석의 원형 초석을 바탕으로 배흘림이 뚜렷한 기둥을 세웠다. 기둥 위에는 주두를 얹고 포작을 짜올렸으며 기둥과 기둥 사이에는 평방 없이 창방만 설치하고 그 가운데에 공간포를 하나씩 배치하여 주심포와 다포가 절충된 양식을 보여준다. 공포는 외일출목이며 특히 굽받침이 달린 주료와 첨차 형식은 고려시대 주심포 계통의 건물에서 보이는 고식이지만 쇠서[牛舌] 위에 연꽃을 조각한 것과 보아지[樑奉] 형식은 조선 중기 이후의 목조건축에서 보이는 수법이다.
건물의 앞면에는 가운데 칸에 3짝의 살문을 달고, 양 옆 칸에는 2짝의 정(井)자 살문을 달았으며 다른 면은 회벽으로 막았다. 내부에는 고주가 없고 다만 대들보 위에 동자주를 세워서 종보와 종도리를 받치고 있으며, 중앙 및 동북쪽에는 통일신라시대의 철조약사불좌상과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이 안치되어 있다. 천장은 판자로 짠 우물천장으로, 후대에 가설한 것으로 보인다. 바닥에는 방전을 깔았는데 신라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연화문전도 섞여 있다.
장곡사철조비로자나불좌상부석조대좌
장곡사 상대웅전에 철조약사불좌상부석조대좌와 함께 봉안되어 있는 통일신라말 또는 고려초의 철불좌상. 보물 제174호. 높이 불신 61cm, 대좌 165cm. 이 불상은 높은 대좌 위에 결가부좌한 자세로 앉아 있는데 하체에 비해 상체가 약간 긴 편이어서 다소 어색한 느낌을 주며, 전체적으로 짙은 호분이 칠해져 있어 세부표현이 명확하지 않다.
나발로 표현된 머리 위에는 낮은 육계가 얹어져 있고, 얼굴은 거의 3각형으로 눈이 작고 아래로 약간 처져 있어 순진한 인상을 주지만 생동감이 전혀 없다. 불신도 마찬가지로 각이 진 어깨와 밋밋하게 처리된 가슴과 허리, 꼿꼿하게 앉아 있는 경직된 자세, 형식화된 우견편단의 옷주름 표현 등에서 위축되고 빈약한 느낌을 준다. 두 손은 지권인을 하고 있어 비로자나불임을 알 수 있다.
대좌는 가늘고 긴 간주석이 있는 석조대좌로 원래는 석등대석이었던 것을 후대에 대좌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목조광배는 철조약사불좌상부석조대좌와 마찬가지로 전신을 감싸고 있는 주형거신광배로 후대에 만들어졌으며 색채가 아름답게 남아 있다.
장곡사 철조약사불좌상부석조대좌
장곡사 상대웅전에 철조비로자나불좌상부석조대좌와 나란히 봉안되어 있는 통일신라말 또는 고려 초기의 철불좌상. 국보 제58호. 높이 불신 91cm, 대좌 141cm. 목조광배와 석조대좌를 갖춘 특이한 불상으로 현재 왼쪽 무릎과 양 손의 일부가 보수되었으며 전체적으로 호분이 두껍게 입혀져 원래의 모습에서 많이 변형되었다. 나발의 머리 위에는 낮은 육계가 있고, 얼굴에는 눈·코·입이 작고 뚜렷하게 표현되어 있다. 법의는 우견편단으로 걸쳤는데, 얕은 선각으로 처리된 옷주름은 몸에 밀착되면서 흘러내려 결가부좌한 두 다리 사이에서 부채꼴 모양의 주름으로 마무리되었다. 이러한 옷주름 표현은 8세기 중엽의 석굴암 본존불을 비롯한 통일신라시대 불상에 많이 나타나는 특징을 형식적으로 따른 것이다. 오른손은 무릎 밑으로 내리고 왼손은 다리 한가운데에 올려놓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고 있으나, 이전에는 왼손에 약합이 놓여져 있어 약사불이라고도 불렀다. 대좌는 불상에 비해 상당히 큰 편이며, 불상과는 달리 석조로 만들어졌고 조각기법이나 양식 면에서 뛰어난 작품이다. 사각형태의 대좌는 상대석·중대석·하대석으로 이루어졌는데 하대가 상대·중대보다 넓고 높은 편이다. 지대석은 유난히 넓으며 사방 모서리에 둥근 구멍이 뚫려 있고 그 위에 하대석이 놓여 있다. 하대석에는 각 면에 안상(眼象)이 4개씩 새겨져 있고, 각형의 2단 받침이 양감 있게 조각된 복련을 받치고 있으며 네 모퉁이에는 귀꽃이 입체적으로 조각되어 있다. 중대석은 각형과 호형(弧形)의 5단 받침 위에 놓여 있고 각 면에는 큼직한 안상이 2개씩 새겨져 있다. 상대석은 중대와 하대에 비해 현저하게 낮으며 앙련과 복련이 받치고 있다. 목조광배는 불신 전체를 감싸고 있는 주형거신광배(舟形擧身光背)로 나중에 만들어진 것이며 연꽃무늬와 불꽃무늬 등에 색채가 선명하게 남아 있다. 이 불상은 근엄한 얼굴표정이나 비교적 당당한 체구, 부채꼴 모양의 옷주름 표현 등에서 전성기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양식을 이어받은 통일신라 말기 또는 고려 초기의 조각으로 추정된다.
장곡사하대웅전
장곡사 상대웅전 아래에 위치한 조선 중기의 목조건물. 보물 제181호. 평면구조는 앞면 3칸, 옆면 2칸이며 맞배지붕의 건물로 높은 축단 위에 세워져 있다. 기둥은 민흘림이며 기둥 사이에 공포를 짜올린 다포계 양식으로 되어 있는데, 건물의 좌우 옆면에도 창방과 평방을 마련하고 공포를 배치한 점이 특이하다.
공포는 내외2출목으로 되어 있으며 앞면에는 가운데에 공간포를 2개씩 배치한 데 비해 옆면 기둥 사이에는 1개씩 두었다. 바깥 공포에는 밖을 향한 쇠서가 달려 있고, 안에는 들보를 받치고 있는 맨 위의 살미첨차가 보아지와 같은 형태이고 건물 앞면 가운데 칸에는 사분합의 정자 살문을, 양 옆 칸에는 이분합문을 달았으며 서쪽 옆면에만 1개의 출입구가 있다. 천장은 우물천장이며, 내부 바닥에는 우물마루를 깔았고 그 위에 고려시대의 금동약사불좌상이 안치되어 있다.
장곡사금동약사불좌상
장곡사 하대웅전의 주존불로 봉안되어 있는 고려시대 금동불좌상. 보물 제337호. 높이 88cm. 이 불상은 1955년 복장유물 조사에서 여러 경전과 함께 "至正六年丙戌六月十六日誌"라는 묵서명이 발견되어 1346년(충목왕 2)에 조성되었음이 밝혀졌다.
현재 광배와 대좌는 없고 불신만 남아 있는데 보존상태가 좋은 편이며 처음부터 이 전각에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머리와 조그만한 육계는 나발로 표현되었으며 그 사이에 둥근 계주가 장식되어 있다. 얼굴은 갸름한 편으로 눈·코·입이 단정하고 작게 표현되었다. 어깨는 둥글게 처리되었으며, 어깨에 비해 결가부좌한 다리의 폭이 넓어 안정된 비례를 보여준다. 통견의 법의는 두꺼워 신체의 곡선이 전혀 드러나지 않았지만 옷주름은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면서 비교적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
또한 많이 드러난 가슴 위로는 군의와 띠매듭, 꽃무늬가 장식된 마름모꼴의 금구(金具) 장식이 보이는데 이러한 착의 형식은 고려 후기의 불·보살상에 많이 나타나는 특징이다. 오른손은 어깨 위로 올려서 엄지손가락과 가운뎃손가락을 맞대었으며 왼손은 가슴 앞에서 손가락을 약간 구부린 채 약합을 들고 있다. 이 불상에 보이는 온화한 얼굴 표정, 균형잡힌 신체, 간략하고 부드러운 옷주름 표현 등은 충청남도 서산에 있는 문수사금동아미타불좌상(1346)과 양식적으로 유사하다. 고려 후기 불상양식의 대표적인 예로 고려조각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장곡사미륵불괘불탱
개설
국보 제300호. 삼베 바탕에 채색. 세로 8.69m, 가로 5.99m. 철학(哲學), 천승(天勝), 신밀(信密), 일호(一湖), 해종(海宗) 등의 화승(畵僧)이 1673년(현종 14)에 그렸다. 왕·왕비·세자의 만수무강을 기원한 이 괘불탱은 화기에 ‘영산대회괘불탱(靈山大會掛佛幀)’이라 쓰여 있고 본존은 ‘미륵존불(彌勒尊佛)’이라 하였다.
내용
연꽃을 들고 있는 화려한 보관불(寶冠佛) 중심으로 많은 권속들이 둘러 선 군도식 구도이다. 즉 비로자나불과 노사나불이 독립된 존상으로 비교적 크게 표현되었고, 미륵존불의 협시로 6대보살(六大菩薩), 6대여래(六大如來), 10대제자(十大弟子), 범천과 제석천, 사천왕, 천자(天子)와 천동(天童), 아사세왕(阿闍世王)과 위제희(韋提希) 왕비, 용왕과 용녀 등이 둘러 서 있다. 정면 입상의 보관불을 그린 후, 남은 공간에 많은 권속들을 배치한 군도 형식은 단독 형식보다 선행한다.
보관에 비로자나불과 석가불 등 4구의 화불(化佛)이 묘사된 보관불은 천개(天蓋), 그리고 원형(圓形) 두광(頭光: 부처나 보살의 정수리에서 나오는 빛)과 신광(身光: 부처나 보살의 몸에서 발하는 빛)을 갖추었다. 비만한 원통형 체구는 오른쪽 어깨가 넓고 왼쪽 어깨가 좁아 어색하지만 얼굴은 온화하다.
6대여래는 노사나불, 비로자나불, 다보여래, 석가문불(釋迦文佛), 약사여래, 아미타불이고 6대보살은 대묘상보살(大妙相菩薩), 법림보살(法林菩薩), 문수보살, 보현보살, 관음보살, 대세지보살이다. 보통 상단부에 등장하는 가섭존자(迦葉尊者)와 아난존자(阿難尊者), 그리고 범천과 제석천은 이 괘불탱에서는 사천왕과 함께 하단부에 배열되었다. 범천은 원유관(遠遊冠)을 쓰고 홀(笏)을 든 왕의 모습이다.
이 괘불탱의 주조색은 홍색과 녹색이며 그밖에 가볍고 부드러운 파스텔 톤의 하늘색과 금니(金泥)를 대신한 황색(黃色) 등을 사용하였다. 신광의 모란 덩굴무늬 및 화면 테두리의 연속 꽃 문양이 화려하다.
의의와 평가
이 괘불탱에서는 비로자나불과 노사나불이 다른 권속보다 크게 표현되었기 때문에 보관불을 화신 석가불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화기에 본존이 미륵불이라 쓰여 있기도 하고 마곡사 석가모니불괘불탱과 비교한다면 석가불의 협시보살인 미륵보살·제화갈라보살 대신 미륵불의 협시보살인 대묘상보살·법림보살이 표현되었다는 점에서 보관불을 미륵불로 보고 있다.
이 장곡사 미륵불괘불탱과 무량사 미륵불괘불탱(1627년) 외에는 미륵불괘불탱으로 명명한 예가 없어 미륵불괘불탱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또한 권속 중에 여래형 노사나불이 처음 등장하고 있어 주목된다. 그리고 마곡사(麻谷寺) 석가모니불괘불탱(1687년 제작)처럼 각 상에 명문이 밝혀져 있어 괘불탱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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